유형문화유산 목판인쇄의 기술사적 연구자료 제봉문집목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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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봉문집(霽峰文集) 목판(木版)은 그의 막내아들 고용후(高用厚) 광해 9년 (1617)에 남원부사로 자원해 가서 그 해에 남원지역의 부호들로부터 판각에 필요한 재원을 기부받아 모두 481판을 제작하였다. 재질은 박달나무로 양면 판각인데 크기는 3종류로서 가로세로의 길이가 27×16㎝, 33×18.5㎝,33×21.6㎝이며 대부과분 詩集이다. 시집 외 정기록(正氣錄)과 유서석록(遊瑞石綠), 제하휘록(濟下彙錄), 霽峰年譜(제봉연보), 포충사지(褒忠祠誌)가 있다. 이 목판은 눌제(訥霽), 사암(思庵), 고제목판(高霽木版)과 함께 17세기 개인 문집 목판으로서 목판인쇄의 기술사적 연구자료와 더불어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문화재이다. 현재 목판(木版)은 포충사 입구 우측(右側) 정기관(正氣館)에 보관되어 있다. 판각의 제목을 간략하게 적으면 다음과 같다.
1) 제봉문집(霽峰文集)과 속집(續集) 및 유집(遺集)
이 문집은 제봉이 전장으로 떠날 때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어린 막내아들 고용후에게 자신의 시문집(詩文集)을 잘 간직해 달리는 말을 하였다. 고용후는 어지러운 전란의 피난길에서도 이 문집만은 꼭 지니고 다녔다가 나라가 평정된 후 남원부사로 왔으므로 부친의 문집을 간행하여 세상에 전하였다. 문집은 1권 1책으로 되었으나 곧 속집이 1권 1책이요 유집(遺集)이 1권 1책이며, 본 문집에는 백사 이항복과 서경(西坰) 유근(柳根)선생, 명나라 예부주객장응회(禮部主客莊應會)의 서문이 실려있다.
2) 서석록(瑞石錄)
제봉의 나이 42세 되던 해(선조 7년. 1574) 4월 20일 광주목사 갈천(葛川) 임훈(林薰)의 초청으로 지금의 무등산인 서석산에 오른 등산기행문(登山紀行文)이다.
3) 정기록(正氣錄)
임진란 때에 순절한 충렬공 제봉 고경명과 장남 효열공(孝烈公) 집봉(集峯) 종후(從厚), 차남 효열공(孝烈公) 학봉(鶴峯) 인후(因厚) 삼부자(三父子)의 충효정신(忠孝精神), 그리고 그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4) 제하휘록(霽下彙錄)
제봉의 7대손 임연제(臨淵霽) 시민(時民)이 제봉의 년보를 편찬하면서 국사책과 야사(野史), 선현문집(先賢文集)을 보고 고씨일문(高氏一門)에 관계되는 여러 사실과 문적(文籍)을 가려내어 편집하고 약간의 서(序), 발(跋), 사액치제문, 사제문, 시장, 제문, 만사, 행장, 유사, 묘갈 등을 보태어 성책(成冊)한 것이다.
5) 제봉년보(霽峰年譜)
이 연보는 제봉의 7대손 임연제(臨淵霽) 시민(時民)이 편찬한 것으로 권두에 세계록(世系錄)이 있고 다음에 일문삼강도(一門三綱圖)와 삼숙질거의도(三叔姪擧義圖)가 있다. 이 삼강도와 거의도에 의하면 충노(忠奴) 2명을 합쳐서 고씨일문(高氏一門)에 9명의 순절사가 있는셈이며, 그 후 의거에 참여한 분이 3명이나 되었다. 연보는 편년(編年)체로서 제봉이 태어난 중종 28년부터 임진년 7월 10일 순절할 때까지의 편년기록과 그 후에 이어 반장(返葬)기록, 부조(不?)기록, 족여(族閭)기록, 사제(賜祭)기록이 있고 효렬공, 의렬공의 순절과 딸인 노씨(盧氏)부인과 질녀 안씨(安氏) 부인의 순절 기록이 있고, 또 포충사 건사기록, 신도비, 제봉문집, 정기록, 서석록의 편찬 간행기록과 연보 및 제하휘록의 편찬간행 기록 등 1963년까지의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6) 포충사지(褒忠祠誌)
광주 제봉산 기슭에 있는 사액사당(賜額祠堂)으로 제봉과 그의 두 아들 효렬공, 의렬공, 그리고 월파(月坡) 유팽노(柳彭老)와 청계(淸溪) 안영(安瑛)을 봉안한 곳이다. 이 포충사지는 포충사가 세워진 경위와 창건목적, 세운 분들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고 그 후 포충사에 관한 모든 문헌과 운용사항이 기록되어 있으며, 역대 원장(院長)과 제임(霽任)들의 명단, 부속건물에 관한 기문(記文), 상량문(上樑文), 봉안문(奉安文)이 수록되어 있다. 상하 2권 1책으로 하권 말에 부록(附錄), 보유(補遺)가 붙어 있고 원본은 1959년 기해본으로 한적연활자본(漢籍沿活字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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